경제적 자유를 위한 발걸음/좋은 Book & Site

[Book] 50대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긍정적 마인드 2020. 10. 3. 00:06
반응형

 

 




세계역사를 바꾼 중요사건들의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세계사를 넘어 금융시스템의 발전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추천서이다. 세계를 바꾼 50대 사건들의 이면엔 돈이 있엇다는 점은 흥미롭다^-^


1부.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영국, 네델란드, 프랑스를 예로들면 저자는 전쟁에는 많은 물자가 필요했고 이로 인해 화폐가 발달하고 나아가 은행이 형성됨은 설명하고 있다. 1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금리가 높은 나라는 투자처로 적합하지 않을때가 많다. 금리가 높은 나라일수록 불확실성이 높으며 자본시장이 발달되지 않았다고 볼 수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경상도 경주 주요가문은 지인과 소작인들에게 17세기 말부터 1910년까지 50%의 금리를 유지했다. 전라도 영암은 1740녀내 40%, 18세기말은 30%, 19세기 중엽은 35~40%. 이는 돈은 갚지 않아서 높은 금리가 유지된것이 아니라 자본축적이 어려워 돈 빌려주는 사람이 많지 않고, 채무 갚지 않고 도주한 이들을 제재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금리가 높은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신흥국 및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발행한 회사태 금리가 높은이유는 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   

 

 

2부. 대항해시대로 열린 '글로벌 경제'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16세기 유럽의 금과 은의 교환비율은 1대 12인대 반면, 그당시 중국은 1대 6이였다는 거다.

은의 가치가 유럽에 비해 중국에서 2배이상이였기에 은을 중국으로 가져만 가도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현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중국과 유럽의 금은 교환 비율이 크게 차이나는게 이해가 안가겠지만, 전화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정보가 매우 귀한 자산이였던 것이다. 실제 지금의 사회를 비교해 볼때 분명 나중에 생각하면 너무나 쉬운 일인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가 귀한 정보가 무었일까? 크고 특별한 것이 아니 도처에 좋은 투자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한상 다양한 정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2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화폐공급이 줄 때 경기가 나빠진다. 역사적으로 가장 큰 교훈은 화폐공급이 줄어들 때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은행 예금이 급겹히 감소하는 상황이 생기면 은행 잎장에서 기업이나 가계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않을 수 없고 빚을 갚을 수 없는 기업이나 가계는 줄줄이 파산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예가 리먼브라더스 투자은행 파산 사건이다. (대대적인 예금인출 사태)

 

 

 

 

3부. 맬서스와 이해할수 없는 신세계

인구가 감소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속성이 있다. 인구과잉 상황은 굳이 값비싼 기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인력을 대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생산성 증가가 빠른 혁신 국가에 투자하라.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는 나라, 생산성 주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 일본을 예로 들어보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주식시장이 기나긴 침체에 빠져신음했다. 부동산 가격급등으로 갑자기 부유해 졌지만, 생상성 향상은 저해되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침체에 빠진것이다.

 

 

4부, 대공황, 아 대공황!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각국은 엄청난 인플레를 겪어야했다. 독일은 1조배 이상의 물가상승을 경험했다. 물가가 급등하면 파운드나 달러 혹은 실물자산을 가진 사람이 승자가 되고, 예금이나 연금 등 금융 자산을 가진사람은 패자가 된다. 모두가 월급을 받는 즉시 현물로 바꾸는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지폐를 버리고 현물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상황으로 독일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대공황은 1929년 부터 1933년까지 발생했던 역사적인 하강을 칭한다. 단 4년만에 GNP(국민총생산)는 26.7%나 줄어들었으니 경제가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을지 짐작이 될 것이다. 대공황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전 6년간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데 있다. 낙관론이 파다할때 그 정점에서 항상 공황은 찾아 오는 것 같다. 주가가 6년가 올랐기 때문에 레버리지 투자를 많이 하게 되었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레버리지 투자는 주가가 많이 하락하게 되면 순자산이 마이너스가 되고 마진콜(추가적인 담보 주식이나 현금을 예치하지 않는 한 강제로 보유 주식을 매도해 대출을 회수하는 전화)이 발생한다. 레버리지 투자가 급격히 증가한 상황에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연쇄적인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일이 1929년 미국 주식시장에 대규모로 벌어졌다. 여기에 시장금리까지 상승해 주식시장에 큰 타격을 주었다.

뉴욕 연반준비은행은 왜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을까? 주된 원인은 금본위제와 청산주의적 정부의 태도였다. 그리고 은행위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 대공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4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불황이 시작될 때에는 단호하게 행동하라! 다소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불황이 경제 전체에 끊없는 악순환을 유발하기 전에 과단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2008년 리만브라더스 당시 양적완화 등 미 연준의 즉각적 대응과 G20 정상회담 후 주요국 재정지출 늘리는 것의 합의등의 대응책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5부.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후의 세상

미국은 변동화율제도(환율을 외환시장에서의 수급에 의해 결정하는 시스템)에서 고정환율제도(특정귀금속이나 통화에 대해 교환비율을 통일시킨 제도)로 회귀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협조하는 국가에게 미국시장을 개방하는 한편, 세계 교역통행로에 대한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조취는 실로 놀라웠다. 다른 나라들은 보통 패권을 장악 할때 영토를 빼앗거나 식민지화 하는데 말이다. 이 덕분에 세계는 극적인 성장의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있었고 그 당시 독일의 자동차와 기계산업, 일본의 값싸고 고품질의 전자제품은 미국의 경상수지를 더욱 악화 시켰다. 이로써 달러의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로인해 닉슨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지하였고, 새로운 금융질서를 수립하였다. 이를 분기점으로 미국은 역사적인 랠리를 펼칠수 있게 되었다. 세계경제는 인플레라는 대가를 지불한 대신 경기안정이라는 이익을 취했다.

 1980년대 초반 인플레는 10년간 지속되었고 달러는 금가격에 비해 90%이상 하락함으로써 미국경제는 물론 달러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때 미 연준 신임총제인 폴 볼커는 인플레 안정을 위해 정책금리를 20%로 끌여올렸고 결국 인플레를 잡았다.

 금가격 급등 이후 원유가격도 인상이 되었다. 국제유가는 장기적인 흐름에서 미국의 실질 정책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1980년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뀌는 순간 유가도 역사적 고점을 기록한다. 1983년 이후 유가가 기나긴 하락의 흐름을 이어간건 수습 불균형때문이였다.

5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중앙은행에 맞서지 마라! 미 연준의 실질 정책금리가 플러스 국면에 도달하거나 상승하면 주식가격이 급락하고, 반대로 실질 정책금리가 인하되거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면 주식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쉬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기조를 늘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6부. 일본경제는 어떻게 무너졌나?

미국 레이건 행정보는 환율조정을 통해 경상 수지 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선진 5개국(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과 두가지 합의를 이끌어 낸다.

1)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스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한다.

2) 이것이 순조롭지 못하면 정부의 협조 개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이 플라자 협의로 인해 일본과 미국 그리고 독일 중앙은행은 달러가치 하락을 위해 강력한 시장 개입에 나섯고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을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로 인해 엔고 불황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2.5%까지 인하했지만, 자산시장의 버블을 유발하였다. 이로 인해 달러가 약세를 기록함에 따라 수출기업의 경쟁력이 개선되고 경상수지 적자도 줄어들어 자동차 업종은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엇다.

일본은 주식시장의 버블이 일어나고 나아가 부동산에도 버블이 끼기 시작했다. 경제 성장의 탄력이 둔화되고 도시화 흐름이 일단락된 뒤에 급등세가 이어져 버블이 발생하고 부동산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되었다. 부동산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가격이 결정 되는데 일본 건설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주택을 과잉공급하게 이르렀다. 자산가격의 하락은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디플레를 경험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늦은 경제부양책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보내게 되었다.  

6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어야 한다! 경기가 디플레의 늪에 빠지게 되면 오랜기간동안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으니 경기 부양책으로 돈을 풀어 즉각적인 대응을 해야한다.

 

 

7부 1997년 우리나라는 왜?

1인당 국민소들 1만 4천 달러의 장벽을 돌파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타이완 뿐이다. 경제성장의 초기에 신흥국은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 그리고 값싼땅갑슬 이용해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손쉽게 유치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는 순간 고용이 늘며 경제 전체가 활기를 띈다. 우리나라는 낮은 임금과 극단적 불평등한 토지 소유분포 그리고 저학력이 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토지 개혁이후 농업생산성이 극적으로 개선되었고, 제조업의 적극적 육성으로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이 성공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전을 거듭한 우리날는 왜 외환위기에 빠졌을까? 주력 수출제품 가격이 갑자기 폭락해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면 고용과 국내총생산이 감소하고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금리가 인하되어 해외 투자금이 유출되게 된다. 외환공급이 크게 줄어드니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 환율은 상승한다. 불행히도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어 통화당국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자국의 통화를 거두어 들여야 한다. 우리나라 외환위기는 금융시장을 개방하면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한 당국의 실수 때문이다.

 외환이후 우리는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나?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건전해지고 경제전체의 이자율이 낮아지는듯 긍정적인 면이 많아졌다. 하지만 GDP(국내총생산)에 비교한 경상수지 흑자 폭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원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가계저축이 늘어난 반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7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건전 재정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기업들의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재정긴축정책이 시행되며 대규모 경상수지 및 재정 흑자가 발생했고 내수경기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선 적극적 금리인하 정책을 펼쳐야하는데 이는 부동산 가격의 독주로 이어졋다. 내수 경기가 더 말라 붙고 청년층의 실험문제가 만성화 되면, 조세 수입의 기반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위해 고민을 더욱 해야 할 시점이다.

 

 

 

50대 사건을 통해 돈의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이였다. 역사를 뒤돌아 보니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해서 되풀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잊지말고 현재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투자의 방향에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공부하며 대응력을 길러 가야 할 것이다.   

 

 

 

 

728x90
반응형